《공기에 관하여》는 서로 다른 형식과 매체로 연주되는 네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진동이 가진 다양한 시간성을 교차하며 소리를 둘러싼 입체적인 시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공기 분자의 진동에서 시작된다. 이 진동이 매질을 통해 우리의 청각기관에 도달하는 순간 소리로서 인식되는데, 이전에 발생한 음이 보존되고 새로운 음이 겹쳐지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매순간 고유한 시간의 구성으로 전달된다. 즉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내포한다. 그레이코드, 지인은 공연을 통해 공기의 진동이 가진 동시성과 실시간성을 추적하는 한편 소리에 투영된 주관적 인지를 활성화시켜 공기의 진동을 청각 이상의 시지각적 성질로 감각하게 한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No. 1>은 공기를 매개로 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인 호흡을 통해 신체 안팎으로 이동하는 공기의 존재와 운동성을 상기시킨다. 스크린 속 애니메이션 영상과 숨을 마시고 뱉는 소리의 반복은 공기가 이행하는 움직임과 리듬을 구조화하며 공기를 물질로서 지각하게 한다.공기의 존재는 이번 공연을 나타내기 위한 가능성과 조건이 되어 비가시적인 현상의 실재성, 물질성의 창출에 참여한다.
두 번째 작품 <No. 2>는 공기의 밀도 차로 인한 소리의 변화를 현상적으로 전달한다. 진동의 고유한 속도와 압력이 변화하면 청각 기관에 도달하는 시간이 달라져 우리의 청각과 인지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공기의 밀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소리의 속도가 느려져 상대적으로 낮은 음을 전달하고, 반대로 밀도가 높을 때는 높은 음을 전달한다. <No. 2>는 릴테이프의 재생 속도를 임의로 조절하는 전자 악기를 활용하여 컴퓨터로 만들어진 사운드의 음속을 물리적으로 변화시켜 특정 소리에 관한 우리의 보편적 인지를 낯설게 만든다. 그레이코드, 지인은 익숙하지 않은 물리값으로 재생되는 변형된 소리 위로 변형되지 않은 실시간 피아노 연주를 쌓아 올림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의 압축과 확장, 충돌과 융합, 긴장과 이완을 드러낸다.
마지막 <No. 4>에서는 무대라는 공간과 지금 이 순간의 시간성을 넘어 진동의 입체적인 시공간에 파생된 소리들을 연결한다. 공연이 열리는 물리적 장소인 아트선재센터 아트홀은 건축적 토대가 있고, 이는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이코드, 지인은 공기의 파동 안에 형성되는 유동적인 공간을 실재하는 공간 너머에 상정하며 우리의 축적된 경험이 이끄는 소리에 대한 주관적 인지와 감각의 영역을 만나게 한다. 매개된 공간 안에 존재하는 공기의 진동은 그레이코드, 지인이 연주하는 전자음으로 치환되어 고요하던 공간을 동시적으로 채운다. <No. 4>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진동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실시간적 관계 맺기를 지속하며 실재하는 장소 안팎에서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공기에 관하여》는 그레이코드, 지인이 만들어낸 전자 음악 사운드에 악기를 작동시키는 버튼음이나 테이프 감기는 소리,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다 발생하는 잡음 등 소리의 출력과 관련된 여러 물질적 행위를 더해 ‘듣기’라는 비가시적 현상을 물리적으로 드러내고 형상화한다. 그리고 공연이 만들어내는 공기의 진동과 울림이 소리를 둘러싼 개인의 의식적/무의식적 기억과 접촉하는 계기를 만들어 관객의 시지각을 촉발하고, 모종의 청각적 시공간을 형성한다. 공기의 진동이 처음 발현된데부터 우리의 신체 감각에 도달하기까지 전개된 공감각적 심상은 이 모종의 청각적 공간 안에 머무르고, 퍼져나가고, 다시 사라지며 50분의 공연이 종료된다. 진동은 공간 안에서 항상 변화하고 끊임없이 변주되며 돌발성과 우연성을 지닌다. 네 번의 공연마다 생성되는 음악적 질료 역시 매번 다르고, 그것과 관계 맺는 관객의 인지나 전개된 심상도 다를 것이다. 공연을 이루는 비가시적 요소의 물질성은 언제나 새롭게 생성되며, 반복되지 않고, 붙잡을 수도, 복원할 수도 없다. 마치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예술적 사건과 같다. 《공기에 관하여》는 모종의 청각적 시공간에서 그레이코드, 지인의 음악을 통해 현상으로 드러났다 사라지지만, 우리의 신체와 인지 속에 나타난 정서적 반응과 심상은 공기의 진동이 가진 물질성, 공간성, 시간성을 새롭게 사유하게 하며 잔향을 남긴다.
글. 조희현(아트선재센터 전시팀장)